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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된 기록은 확인됐습니다. 대정친목회는 현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친일 단체로 설명됩니다. 다만 안상호는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정부가 확정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 핵심 내용 핵심 내용을 정리한 정보형 이미지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 핵심 내용 핵심 내용을 정리한 정보형 이미지

그래서 이번 논란은 단순히 ‘친일파다, 아니다’ 두 문장으로 끝내기 어렵습니다. 8월 13일 역사강사 배기성이 하영의 해명과 가족사 언급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다시 검색이 늘었지만, 확인된 역사적 기록과 전문가의 평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의혹을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기성과 하영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나

직접적인 출발점은 2026년 8월 7일 방송입니다. 하영은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증조부부터 이어진 4대 의사 집안 이야기를 소개했고, 증조부가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배워 한국에서 개원했으며 고종을 진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증조부가 근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과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온라인에서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 배기성과 하영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나 핵심 내용을 정리한 정보형 이미지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비판, 안상호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없나 - 배기성과 하영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나 핵심 내용을 정리한 정보형 이미지

하영 측은 처음에는 안상호가 증조부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친일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제시되자 8월 11일 입장을 정정해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라 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앞선 답변을 내놓은 점도 사과했습니다.

다음 날인 8월 12일에는 하영이 직접 자필 사과문을 냈습니다.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이해했고,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점을 반성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같은 날 공개된 '최욱의 매불쇼'에는 역사강사 배기성이 출연해 이 문제를 다뤘고, 관련 발언이 13일 여러 매체를 통해 확산됐습니다.

작성자 계산: 8월 7일 방송에서 가족사가 공개된 뒤 8월 13일 배기성의 비판이 주요 기사로 확산되기까지는 6일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가족사 소개 → 친일 의혹 제기 → 소속사 부인 → 기록 확인과 입장 정정 → 하영 사과 → 역사강사 공개 비판으로 쟁점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배기성은 하영을 왜 비판했나

배기성의 비판은 크게 두 부분입니다. 하나는 안상호의 역사적 행적이고, 다른 하나는 하영이 성인이 된 뒤에도 가족사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책임 문제입니다.

배기성은 8월 12일 방송에서 하영의 가족사 이야기를 듣고 안상호를 떠올렸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에 참여한 점과 일본 유학 이후 행적 등을 거론했고, 하영이 증조부의 과거를 몰랐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에도 강한 비판을 내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배기성의 비판 자체와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배기성이 하영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은 그의 평가입니다. 반면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있었다는 것은 자료로 확인되는 기록입니다. 이 둘을 분리해서 봐야 논란의 사실관계가 선명해집니다.

안상호에게 실제로 확인된 기록은 무엇인가

안상호는 1872년 태어나 1927년 사망한 근대 의사입니다.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기록돼 있습니다. 왕실 진료에도 참여해 고종과 순종의 의료진으로 활동한 기록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하영이 이야기한 증조부의 의료계 경력 자체가 모두 허위였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이후의 일제강점기 행적입니다.

역사 연구 자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대정친목회 간부진 21명의 평의원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정친목회의 정식 명칭은 대정실업친목회이며 대정친목회라고도 불립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단체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조선 귀족과 대지주, 자본가 등이 중심이 됐고 일제의 이른바 ‘일선융화’ 정책 선전에 이용됐다고 평가합니다.

안상호 개인의 의료계 활동과 대정친목회 참여 기록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근대 의료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친일 관련 기록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친일 관련 기록 하나만으로 그의 전체 생애가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논란을 이해하는 데 바로 이 구분이 필요합니다.

친일 행적이 있다는데 왜 친일인명사전에는 없나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관련 행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최근 안상호의 경우 당시 사전 수록 기준에 미달해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전 등재 여부는 특정 기록 하나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적극성, 반복성, 지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는 설명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안상호에게 친일 행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앞으로 추가 자료가 확인되면 개정 과정에서 수록 여부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은 같은 제도가 아닙니다.

안상호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해 확정한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상태는 세 단계로 나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확인된 기록: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됨

역사적 평가: 대정친목회는 친일 단체로 평가되며,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도 안상호에게 친일 행적이 있다고 설명

공식·사전 등재: 친일인명사전과 정부 친일반민족행위자 확정 명단에는 안상호가 없음

이 세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단 등재 기준보다 넓은 범위에서 친일 관련 행적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사이에서도 ‘친일파 단정’에는 차이가 있다

안상호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전문가 의견도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여부와 별개로 안상호에게 친일 행적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8월 13일에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한 관계자 역시 안상호의 일제 협력 관련 기록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역사학자 심용환은 대정친목회 가입과 일제의 홍보에 활용된 기록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부역 행위의 수준을 더 따져보지 않고 한 인물을 곧바로 ‘친일파’라고 확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안전한 표현은 ‘안상호의 친일 관련 행적과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이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부가 공식 지정했다’고 쓰면 사실과 다르고, 반대로 ‘친일인명사전에 없으니 친일 관련 기록도 없다’고 하는 것도 현재 확인된 자료와 맞지 않습니다.

고종 독살설까지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번 논란에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고종 사망과 안상호를 연결하는 주장입니다.

안상호가 고종의 진료에 관여했던 기록은 있지만, 안상호가 고종 독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고종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은 당시에도 퍼졌지만 이를 안상호의 범행이나 가담으로 확정할 직접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심용환 역시 고종 독살설을 확정된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배기성이 방송에서 안상호와 고종 사망을 둘러싼 의혹을 언급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새로운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검색 과정에서 가장 쉽게 잘못 전달될 수 있습니다.

대정친목회 평의원 기록은 확인된 자료이고, 고종 독살 가담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입니다. 두 내용을 같은 수준의 사실처럼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하영의 책임과 증조부의 행적도 따로 봐야 한다

하영은 8월 12일 직접 사과하면서 가족에게 들은 내용을 중심으로 증조부를 이해했고,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사를 자랑처럼 언급한 점을 반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서 하영에게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조상의 행위를 물려받았느냐가 아니라, 공개 방송에서 역사적 인물인 가족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했느냐​에 더 가깝습니다.

증조부의 행위 때문에 후손에게 동일한 역사적 책임을 자동으로 부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배기성은 성인이 된 하영이 공개적으로 가족사를 언급한 이상 확인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후손 개인에게 조상의 책임까지 확대하는 여론 재판을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확인된 사실만 놓고 보면 논란의 핵심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하영의 증조부는 안상호가 맞고,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린 기록도 확인됩니다. 대정친목회는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됩니다. 하영 측도 이 기록을 인정했고 하영은 직접 사과했습니다.

다만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이나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확정 명단에 포함된 인물은 아닙니다. ‘친일 관련 행적이 확인된 인물’과 ‘정부가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인물’은 현재 기준으로 동일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종 독살 가담처럼 현재 증거로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는 사실처럼 확대하면 안 됩니다.

배기성의 비판이 다시 논란을 키웠지만, 결국 이 사안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기록으로 확인됐고 어디부터 해석과 의혹인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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